< 메마른 공기 속 드러나는 것들 >
2020
불안의 응시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1.
  김소라가 그리는 그림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불안에 대한 치유적 장소다. “나의 작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주변 환경들에 의해 발생하는 불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유년시절 추억이 깃든 장소가 고층 아파트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느낀 소외감으로 어느 순간 낯선 풍경과 자신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감에서 발생하는 불안감이다. 이러한 분리 불안과 소외를 치유하기 위한 작가적 시선은 활력이 사라진 방치된 공간, 누구도 찾지 않는 발길이 끊긴 곳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는다. 그 흔적 너머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방치되어 버려진 곳의 존재감의 회복을 위해서 ‘소외된 풍경’을 두툼한 붓질로 묵직하게 기록한다.
 ‘불안은 방출되지 못한 자극들이 축적됨으로써 무기력함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프로이드)이기도 하지만, 김소라의 불안은 방치된 풍경의 응시를 통해 상실의 시대, 무감각해진 감각들을 회복하기 위해 붓을 들고 불안을 통제한다. 그래서 ‘방치된 공간’은 김소라 작업에 있어 불안을 통제하고 나아가 치유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방치된 공간은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은유로써 버려진 풍경이자 무대의 바깥에 놓인 풍경이기 때문이다. 김소라는 방치되고 버려진 곳을 되살리고 물감으로 치유하듯 구석구석 붓으로 어루만진다. 이렇듯 방치된 장소는 기억을 환기하는 풍경으로 심리적 공간과 촉각적인 질감을 통해 그만의 존재감을 회복한다. 할아버지의 부재로 혼자되신 할머니 < 할머니 방 >는 예전의 낡고 작은 집 옆에 현대식 주택을 지어 살고 계신다. 재래식 화장실도 아파트의 신식 화장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전보다 훨씬 편리해졌다. 하지만 손녀인 김소라의 기억에는 할머니 집은 여전히 낡고 허름한 과거의 기억들이 겹친다. < 할머니 방2 >를 보면 벽에 걸린 어린아이의 사진이 걸린 그림이다. 할머니가 바라보는 손주와 이제 성인이 된 사진 속의 손주가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 기시공간에서 기억을 품는다.
 할아버지의 부재가 투영된 대형회화작인 < 빈자리 >는 명절이면 할머니 댁에 갔지만, 인터넷 접속이 안돼서 소와 외양간이 친구이자 놀이터였지만, 할아버지의 부재로 외양간에는 소가 사라지고 텅 빈 곳이 되었던 심리적인 공간을 투영한 그림이다. 소가 있던 공간은 폐허가 되어있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보는 존재(작가)의 시선은 방치된 흔적만큼 부재에 대한 그리움은 더 깊고 넓게 다가온다.
 
2.
  김소라의 풍경은 부재에서 생기는 심리적 불안을 치유하기 위한 풍경이다. 신체적 및 심리적 반응인 불안을 김소라는 사적이거나 공적인 기억으로 확장해 간다. ‘방치된 유원지’와 ‘개발제한 구역’에 대한 주제는 부재를 보는 ‘불안의 응시’가 개인에서 문맥으로 확장한다. 보이는 것, 경험 한 것을 응시하면서 그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작가가 응시하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을 기점으로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시‧공간의 확장일 것이다. 아이였던 자신과 성인이 되었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불완전한 자아의 틈새, 그 시‧공간의 심리적 간격을 연결하는 장소,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이다.
 대표적으로 < 부곡하와이 >는 대형 회화작업으로 ‘방치된 유원지’를 그렸다. 2017년 5월 부곡 하와이가 폐장된다는 기사를 보고 가족과 함께 혹은 유년기 견학을 갔던 기억의 조각으로 존재하는 장소, 그 아련한 기억 속에서 폐장하는 순간, 그 이후는 기억의 흔적들만 겹치고 교차한다. 김소라는 그 기억의 단편을 찾아가 기억의 저편에 있는 시‧공간을 겹치며 변화된 모습을 겹겹이 쌓이듯 강한 붓질로 물감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방치된 현재의 실체를 강조하기위한 방식으로 취했다고 한다. 물감의 색과 질감으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감각의 기록들, 유년 시절의 불완전한 신체를 극복하는 성인이 된 화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몸의 성장은 정체성의 형성과정이고 완결되지 않는 삶의 노정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기억은 성장기를 통해 생리심리적인 정체성의 방 속에 자신만의 기억을 저장한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은 실재와 상상이 겹치는 장소이자 불안과 결핍을 생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김소라에게 있어서 유년시절의 행복한 기억이 담긴 부곡하와이에 대한 폐장 뉴스는 상상과 현실, 과거와 미래 사이가 겹치는 시공간적인 공명으로 남겨지는 동시에 지워지는 흔적일 것이다.
 < 개발제한구역 >은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다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곳을 발견하고 그린 그림이다. ‘개발제한구역’은 마치 청소년시절 모험을 위해 일탈을 감행하는 것처럼, 호기심의 공간인 동시에 불안심리 역시 작동한다. 이곳의 제한 구역은 도시경관을 정비하고, 환경을 보전한다는 명목 하에 지정된 곳으로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아 잡초들이 뒤엉킨 풍경을 통해 ‘방치된 풍경’의 확장된 응시일 것이다. 김소라는 “그곳에서 발견되는 건초더미들과 죽은 나무들, 누군가가 버리고 간 쓰레기들은 그곳이 방치되어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이다. 나는 이곳에서 발견하는 흔적들의 재현을 통해 유령화 된 과거와 현재의 틈 속 상실된 것들에 대하여 기록,”임을 밝힌다.

3.
  김소라의 ‘불안의 응시’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기억의 장으로 끌어내는 생생한 현실의 장이 된다. 직접 경험한 장소와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장소를 주제로 하던 작업을 지금은 대구와 영천을 오가며 마주하는 풍경을 그린다. 섬세한 기억이나 감정을 강열하게 표현하는 김소라는 감정의 무게를 물감과 붓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규격화되고 체계화된 시스템보다는 감정에 다가가기위해 물감과 붓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표현하는 이 작가는 앞으로는 ‘가까이에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 것, 전단지 이미지, 소품으로 망가진 테이프 등으로 설치를 시도해 보고 싶다고 한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다가 점점 좋아하는 것을 최근에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더 마주보고 나 자신을 보다 명확히 알게 하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전의 작업이든 또 다시 시도하는 작업 역시 김소라가 보고 감각했던 ‘시‧지각의 장’일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시‧공간적 경험이 담긴 현실의 장이자, 이를 회화적 감각으로 변형한 풍경이다. 그것은 변화된 현실과 변하지 않은 기억에 대한 응시를 통해 불안 너머의 세계에 가 닿게 하는 무한히 열린 장이다.